견본주택을 처음 선보인 중산층 아파트


1968년 장동운 대한주택공사 4대 총재는 일본 출장 중 호텔에서 신문을 보다가 무릎을 쳤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감을 준 것은 일본 신문 광고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주택분양 광고였다. 특히 ‘하이츠’와 ‘맨션’이라는 이름의 고급 아파트 광고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때는 일본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을 위한 고급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도 서민아파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생활수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주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수행할 민간 건설업체가 거의 없었다. 장 총재는 어쩔 수 없이 주택공사가 이 과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강맨션아파트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중산층 아파트인 한강맨션아파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주공은 장 총재의 구상에 따라 29억7200만원을 투입해 공급면적 89㎡(27평), 105㎡(32평), 122㎡(37평), 168㎡(51평), 188㎡(57평) 등 5개 주택형 24개동(관리동 포함) 총 660가구의 단지를 조성했다.
부지는 동부이촌동 공무원아파트 옆에 수자원개발공사가 매립한 한강 북변(北邊)을 골랐다. 평면설계는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 입식 구조를 채택해 마포아파트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했다. 침실과 부엌을 완변하게 분리했고 중산층 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해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건축 기술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많아 주택공사 기술진이 현장 직원들을 지도하면서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주공은 성공적인 분양을 위해 200만원을 들여 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짓고 800만원의 광고비를 사용했다. 아파트 본 공사를 하기도 전에 견본주택을 건립한 것은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서 한강맨션아파트가 처음이다. 이런 ‘역사적 의미’ 때문이었는지 견본주택 기공식에는 국무총리까지 참석해 흥행을 도왔다.
그렇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서민 주택을 건립해야 할 주택공사가 중산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본래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는 목소리가 거셌다. 이에 대해 장 총재는 ‘주택개량과 주거기능 향상의 선구적 역할도 주공의 임무 중 하나’라며 국민을 설득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견본주택과 분양 광고에도 불구하고 초기 입주가 저조했던 점이다. 면적이 큰 주택형들은 분양을 끝냈지만 다른 평형은 신청자가 많지 않았다. 한강맨션아파트 준공에 앞서 일어난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것도 초기 분양 실패의 원인이 됐다.
이런 비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택공사는 분양촉진비를 지급하면서 임직원들을 ‘아파트 판매’에 동원했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으로 미분양은 해소됐고 나중에는 대표적인 중산층 아파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잇따라 건설된 반포와 잠실, 여의도, 압구정 현대 등 중산층 아파트의 선구적 모델을 제시했다.
한강맨션아파트는 총무처가 주관해 1966년부터 3년간 건설한 공무원아파트와 1970년 건립된 한강외인아파트, 1971년 준공된 한강민영아파트와 더불어 한강변을 따라 총 3220가구로 규모로 조성된 한강아파트 단지에 속한다. 요즘에도 3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는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40년전 이런 단지가 조성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학교와 공공기관, 상가 등 각종 편의시설과 주거공간을 한 곳에 모아 놓아 놓은 ‘근린주구론’에 입각한 아파트 단지 개발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한강아파트 단지는 한강변을 따라 주거동과 상가, 학교 등 길게 늘어선 모양으로 설계됐다. 상가들은 1층에 아케이드 방식으로 배치됐고 가로 축을 따라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계획했다. 주택공사 40년사는 한강아파트 단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동서방향을 관통하는 간선가로에 따라 1,2층에 점포가 복합된 5층 주거동을 노선상가 형태로 배치해 가로공간이 전체 단지의 생활축이 되도록 짜여져 있다.”
한강맨션아파트를 비롯한 한강아파트 단지는 아파트가 중산층을 위한 주택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단지가 들어선 동부이촌동 일대 한강매립지는 우리나라 중산층이 모여 사는 ‘부촌(富村)으로 변신한다.

<1970년 촬영한 한강맨션아파트>
영화배우와 정치인과 기업인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한강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도 이 곳에 있는 아파트는 10억~20억원대를 호가하는 비싼 아파트에 속하며 입주민 중에는 대기업 그룹 회장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한강외인아파트가 ‘GS한강자이’로 이름이 바뀌는 등 1970년대초 건립됐던 아파트는 대부분 재건축됐지만 한강맨션아파트는 지금도 그 자리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강맨션아파트도 현재 재건축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있어 언젠가는 ‘최초의 중산층 아파트’, ‘최초의 견본주택을 선보인 아파트’라는 추억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사진제공=대한주택공사
[장박원·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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