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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정운찬 국무총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여기 인생의 밑바닥을 뼈저리게 경험한 4명이 있다. 가난과의 싸움, 젊은 날의 방황, 그리고 정상을 향한 도전…. 그들의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토막 정도씩 소개해보자. 퀴즈 맞히듯이 한번 테스트 해보시길. 

 

A=어머니는 가끔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아들에게 먹였다. 어떨 때는 그게 끼니였다. 학교에 가면 얼굴이 벌게지고 술 냄새가 진동했다. 사정을 모르는 담임선생한테 술 먹고 학교 오느냐고 혼쭐이 났다. 집안 사정이 어렵다보니 어머니는 그를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장사를 시키려 했다. 그는 형의 성공을 위한 희생양이었다. 중학교 선생이 부모님을 설득해 어렵사리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뻥튀기 장사를 해서 학비를 벌었다. 남 보기가 부끄러워 밀짚모자를 꾹 눌러썼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는 “도둑질 하는 것도 아닌데 사내 대장부가 왜 그리 당당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랬다.

 

B=어머니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임신을 한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안이 기울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이를 또 낳게 되다니. 태아를 지우려고 익모초를 진하게 달여 마셨지만 아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살림을 도맡았다. 삯바느질과 병원 빨래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미국이 구호양곡으로 보내준 옥수수에 물을 많이 붓고 끓인 죽을 온 식구가 나눠 먹어야 했다. 공부를 잘해 입주 과외선생이라는 일거리가 생겼다. 과외 집에서 싸준 도시락엔 쇠고기장조림과 계란말이가 있었다. 그에겐 사치였다. 죽으로 아침을 때울 식구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C=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낙상을 했다. 어머니와 함께 동생들을 키워야 했다. 힘들게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것도 포항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구룡포였다. 한반도 지도를 보면 토끼 꼬리처럼 튀어나온 그곳이다. 하지만 학교에 간 날은 1년에 한 두달 정도였다. 아침에는 어머니와 함께 호박떡을 만들어 팔고 점심에는 서점에서 점원 노릇을 했다, 돈을 안받을테니 손님이 없을 때 책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얻은 자리였다. 저녁에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다. 손이 부르트고 피가 나도 가족을 돌봐야 하는 그로서는 피할 수 없었다.   

 

D=그의 꿈은 농촌지도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교장선생이 교육감에게 밉보여 시골 중학교로 발령났다. 당시 독서클럽을 이끌던 그는 교장 전근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20일 동안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다. 감옥과의 인연은 참 질기다. 대학교 때 강제징집으로 군에 갔다온 뒤 복학 신청을 했다. 그러나 학생처장은 당국의 지시라며 거부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나선다.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그를 조사한 인물이 뒷날 고문경관으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이었다.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러 교도소에 면회 온 형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는 차마 말문을 열지 못했다. 혹시 큰일이라도 날까봐.

 

 이 정도 간단한 서술만으로도 누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A는 이명박 대통령, B는 정운찬 국무총리, C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D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부인할 수 없는 이 정권의 최고 실세들이다. 아마 권력 서열을 매긴다면 거의 1,2,3,4 등에 포함될 수 있는 인물들이다.


 해방 전후의 시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경험한 사람치고 어려운 청춘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들 뿐이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지금과는 판이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랬더라도 이들의 의지와 노력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소년가장의 경험과 청년시절의 아픔을 공유한 이들이 지금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건 우연치고는 묘하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MB정부가 보수정권이면서도 유난히 서민정책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이런 개인적 역사가 깔려있다”고 평가한다.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영리 병원의 도입 문제를 놓고 의견이 오갔다. 기획재정부는 의료서비스를 한 단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영리병원의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보건복지부는 의료비 상승을 부추겨 서민들 부담을 늘릴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이었다.


 이 대통령이 사실상 결론을 냈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좀더 준비를 철저히 한 후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다"고 해명을 했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서민들의 우려를 염두에 뒀다는 게 종합적인 관측이다.


 이날은 이 대통령이 부처별 새해 업무보고를 처음으로 받는 날이었다. 1번 타자는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부, 보훈처 등 4개 부처였다. 이에 대해 김은혜 부대변인은 “이명박 정부가 서민대책을 국정의 최우선에 두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틀 뒤인 16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저신용층에 대한 금융애로 해소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이 되자 김동용 신영시장 상인회장이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수수료 인하로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높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반론을 폈다.


 이를 듣고 있던 이 대통령이 한마디 거들었다. 재래시장 편을 들었다.


 “재래시장과 백화점 카드 수수료율이 비슷하다는 것 보니까 여전히 백화점이 조금 더 싸긴 싼 모양이다. 그런데 백화점은 10만원 단위, 적어도 1만원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는 곳인데 그러나 재래시장은 동전 단위로 거래된다. 동전 단위 규모에 맞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는 굳이 따지자면 영세상인 편”이라고 못박았다.

 

[손현덕 정치부장]